능동적 생성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2024년 한국리터러시학회


진영복(학회장, 연세대)


새봄이 왔습니다.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2024년 1년 동안 한국리터러시학회를 맡게 된 연세대 진영복입니다. 노명완, 김재봉, 정희모, 김종록, 김주환, 신현규, 김성수 전임 회장님의 뒤를 이어받았습니다. 전임 회장님들이 단단하게 틀을 잡고 씨를 뿌려놓은 길을 따라 2024년 한국리터러시학회도 자기의 소명을 묵묵히 수행할 것입니다. 


인구 수축의 시대 

인구가 팽창하던 시대에서 인구가 수축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돌담길 돌아서며 징검다리 건너며 또 돌아보며’ 서울로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은 부모님의 힘든 노고를 기억하면서도 자녀 양육에 헌신하기를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노래 ‘꽃길’의 노랫말을 대입하면, 부모 세대가 ‘몰라서 걸어온 그 길’을 후속 세대는 양육의 헌신과 비용을 알기에 ‘알고는 다시는 못 가’라며 망설이고 부모 세대도 그 선택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 속에는 상승하고 확장하는 성취의 보람뿐만 아니라 각자도생의 경쟁이 유발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음각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모두에게. 이것이 인구 수축 시대로 바뀐 원인 중 하나이겠지요. 


그 결과 서울에도 폐교 위기의 학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서울 외곽에 잘 구획된 신흥 주택지에 신설된 남학교였는데, 줄어드는 학급수를 감당할 수 없어 남녀공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거대한 변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구 팽창시대의 경쟁과 표준화, 규율의 근대에서 벗어나 인구 축소 시대의 공존, 개성, 자율적 생성의 포스트모던으로 변모할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구가 터져 나갈 듯 팽창하던 시대의 교실에서는 정답을 정해 두고 경쟁을 통해 승자를 가려내는 것이 효율적인 교육이었는지 모르지만,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년에 학령인구 20만 명 정도라면 광장에 모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셀 수 있겠지요. ‘겁나게 많아’ 세기를 포기하고 이름 대신 번호로 호명되던 표준화되고 규율화된 교실 이데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육철학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나 아렌트식으로 얘기하면 ‘노동’이 아닌 ‘활동’의 교육철학이겠지요. 인식에 관심을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 결론적 증명도 논리적 수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중요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교육에서 벗어나 세계에 대한 사심 없는 순수 관점을 제시하는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활동이겠지요.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문제와 바람직한 세계상을 합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도 우리 교육이 매우 부족한 부분이었습니다. 독자와 수용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한 마디로 수사학적 관점이 없다시피 한 법률가 출신의 정치 지도자들이 난립하는 이 나라에서 답답함을 느끼곤 합니다. 혼자서 ‘이성’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설득의 공동세계를 추구하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 능력이 더욱 소중해 보입니다.


설득의 과정과 공감의 철학이 없는 우리 공동체는 매일 매일 사사건건 전쟁을 치르고 있고 그런 만큼 우리 공동체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렌트는 문화와 정치에는 진리를 다투는 이성의 영역보다 설득과 공감의 판단력 비판 영역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공유된 세계에 대한 규범적 평가이자 토론과 관련된 판단의 문제,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종류의 행위를 취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결정의 문제를 우리 교육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풍부한 교육자본과 줄어드는 학령인구의 조건 속에서 우리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리터러시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활동이 필요합니다. 세계 이해가 깊어질 때 진부한 사유를 벗어나 우리 공동체를 지킬 수 있고 문화적 능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단순한 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적 활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 리터러시 교육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생성 AI와 풍요로운 황폐?

생성 AI가 자료를 검색하고 비판하고 종합하는 사유의 활동까지 대신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요약, 종합되어 정보의 형태로 제시되고 연결됩니다. 유한한 단독자인 개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생성 AI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증진할 수 있습니다. 2023년도부터 생성 AI는 우리 교육을 뒤흔드는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이미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에세이 평가를 AI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생성 AI 학습 데이터에 주 텍스트와 다양한 관점의 참고문헌을 등록하면 학생들의 에세이에 나타난 지식 내용의 적절성과 응용 능력, 사유의 엄밀성, 비판적 접근과 대안 제시 등도 평가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된다면 근대교육 100년 넘게 진행한 객관식의 정답 고르기에서 벗어나 긴 서술형의 답안과 문제풀이 과정을 평가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적절한 활용 방법입니다. 뇌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창의력을 증진하고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활용 방법에 관한 다양한 교수법이 앞으로 몇 년간 폭발적으로 모색될 것입니다. 생성 AI를 통한 교수 방법은 아무래도 인식과 진리, 결론적 증명에 특화된 장점을 보입니다. 다시 말하면 근대의 이성 중심주의적 사고를 AI가 대신해 줍니다. 그런데 AI는 세계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거짓된 정보를 그럴듯하게 답변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종류의 행위를 취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판단과 결정, 그리고 책임의 문제를 AI는 할 수 없습니다. 신체와 생명, 세계가 없는 AI는 정동(affect)의 경험과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노동이 아닌 활동, 칸트의 <실천 이성 비판>보다는 <판단력 비판>에 입각한 교육철학이 생성 AI 시대 더욱 소중한 지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터러시학회, 능동적 생성의 공동체

우리 학회는 대학작문학회을 모태로 하여 2017년부터 한국리터러시학회로 확대하였습니다. 대학, 초·중등, 문학, 한국어, 디지털, 문화콘텐츠, 여행인문 리터러시 등 7개 분과를 두고 있습니다. 분과는 연구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이사회 승인을 얻어 새로운 연구 분과를 설치하거나 폐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 리터러시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우고 연간 6회 발간하는 학회지를 중심으로 원심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2024년 수석부회장이자 연구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엄성원 교수님과 함께 이 조화의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에는 3회의 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봄 학술대회는 4월 첫째 주 토요일, 가을 학술대회는 9월 첫째 주 토요일, 겨울 학술대회는 12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립니다. 12월 학술대회는 대회장을 마련하여 기조 강연을 마련하는 한편 회원들이 직접 만나 소통하며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에는 인문 여행을 봄, 가을로 2회 갈 예정입니다. 봄에는 <토지학회>와 함께 경남 하동의 토지마을, 박경리문학관, 최참판댁, 악양평야, 고소성 등을, 가을에는 서울 근교의 역사적 장소를 찾아 켜켜이 쌓인 시간의 얼굴을 답사할 것입니다.

우리 학회는 2월부터 2달 간격으로 총 6회의 학회지를 발간합니다. 그동안 편집위원장으로 수고하신 엄성원 교수님이 수석 부회장으로 선출되어서 후임을 최성민(경희대HK사업단) 교수님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뉴스레터는 연 4회 발간합니다. 회원 동정을 알려주시면 다른 회원에게 소식 전달하겠습니다. 학회지의 서평은 간소한 양식으로 매호 3편이 게재될 것입니다. 


우리 학회의 회장 임기는 1년입니다. 순환 주기가 짧은 만큼 회원님들의 능동적 생성의 참여가 있어야 안정성과 새로움의 균형을 이루며 우리 학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2024년에는 우리 학회의 안정성과 새로움의 조화원리를 모색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2월 29일

진영복 올림